게으름으로 인해 할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이 질문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답하기 정말 어려운 문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제가 지식인들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들을 조금 공유하는 방향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가져온 해결책은 ‘완벽주의를 버려라.’ 입니다. 완벽주의가 실질적으로 왜 게으름으로 직결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완벽함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함을 따라가다가 이 벽이 너무 높음을 느끼고 아예 시도조차 안 하게 되는 상태로 전이되면서 게으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예 손도 안 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완벽주의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 우선 완벽주의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완벽주의의 본질은 결국 넓은 자아와 소유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소유 또한 자아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자아에 대해 알아보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자아는 ‘나 자신’을 의미합니다. 이 자아가 넓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전문 분야뿐 아니라 잘 모르는 분야까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활동을 통해 남이 나를 평가할까 봐 두려운 잠재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이 자아가 강해도 되지 않나 싶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서 무아는 자아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는 아예 자아가 없는 상태라고 보기보다 ‘나 자신’이라는 사람이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즉, 내가 지금 꼭 잘할 필요 없다는 그 깨달음을 얻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제 가설을 이해하셨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간적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관점은 진화심리학, 뇌과학에 기반합니다. (이 파트에서는 정재승 교수님의 특강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겠습니다.) 우리의 뇌에는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존재합니다. 뉴런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우리의 시냅스는 자주 활성화될수록 접근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쓰이는 이야기가 바로 양봉꾼들 이야기입니다. 양봉을 하시는 분들은 벌에 자주 쏘이시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몸이 벌침에 대한 대응을 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습관적으로 웹툰을 과하게 본다거나 게임을 과하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꼭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회피하는 활동이 더 끌릴까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우리가 예전부터 생존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길을 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게 될 경우 이 일을 잘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이전 문단에서 서술한 자아의 관점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참고 위험한 길에 뛰어들어보는 노력입니다. 어려운 일도 많이 뛰어들수록 시냅스의 연결이 강해지기 때문에 더 많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아침에 기상송 울릴 때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한 번 일어나보자 하고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 시간이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실천적 관점을 더 알고 싶다면 데이비드 고긴스의 저서나 그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청취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는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도파민 저울의 관점에서 시도해 볼만한 것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할 일을 못 하게 되는 이유는 사실 해야 할 일이 아닌 다른 일에 시간을 많이 쏟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시간을 낭비하곤 합니다. 그 원인은 사실 많이 알려진 도파민 체계의 붕괴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뇌의 프로그램은 과거에 머물러 있기에 지금과 맞지 않은데요. 이 도파민 체계가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도파민을 통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문제인 것이 바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생존 본능입니다. 그 본능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SNS를 켭니다. 이렇게만 보면 사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질적 문제는 이 도파민은 계속 갈망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얻은 정보로 만족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쇼츠, 릴스를 갈망합니다. 저는 그렇게 숏폼의 굴레에 빠져 2~3시간을 보낸 후 다시 할 일을 하려 했지만 도저히 할 일을 할 집중력이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우리 몸의 향상성 유지 체계가 도파민을 많이 느낀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그렘린 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를 비유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고통을 통해 무기력을 겪고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파민 디톡스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저도 이 주장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위 짧은 글을 통해 완벽주의의 극복, 시냅스의 재훈련, 도파민 디톡스라는 세 가지 방향에서 개선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천 방안을 그저 실천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로 전제조건이 맞춰진 상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전제조건은 중용입니다.


글의 구성

<도입>

문제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전하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서술

<본론>

  • 완벽주의적 관점
  • 정재승 교수를 통해 얻은 통찰
  • 도파민네이션을 읽고 상기시킬 수 있었던 것

<결론 및 리뷰>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짚고 강조해야 할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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