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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으름으로인해할일을수행하지못하는경우.. 2탄 written by AI

    게으름 극복 2탄 — 할 일을 쪼개라

    지난 글에서는 게으름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완벽주의, 시냅스의 습관화, 도파민 체계의 붕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그 원인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그 이유가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한 번은 2주 안에 프론트엔드 개발을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목표 자체는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지?’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그 막막함이 저를 다른 일로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마감 기한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실질적인 개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실패가 저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겼습니다.

    할 일이 너무 크면, 뇌는 시작을 거부한다.

    이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진화심리학적 관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위험을 피하려 하고, 실패할 수 있는 큰 도전 앞에서 본능적으로 회피를 선택합니다. 그렇기에 해결책은 그 도전의 크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단계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프론트엔드 개발이라면 ‘설계 기간’, ‘페이지 구현 기간’, ‘API 연결 기간’으로 쪼개고, 각각에 나만의 마감기한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주어진 2주라는 시간이 갑자기 세 개의 명확한 덩어리로 나뉘는 순간, 비로소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막연한 목표를 구체적이고 작은 단위로 쪼개고, 각 단위에 기한을 부여하는 것. 그렇게 하면 뇌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과제가 되고, 시냅스도 조금씩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을 쪼개려 해도,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어디서부터 나눠야 할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 ‘설계가 뭔지’, ‘어떤 순서로 개발이 진행되는지’를 몰라서 막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AI에게 물어보세요. “이 일을 단계별로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라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첫 발을 내딛기 위한 지도를 얻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드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 게으름으로 인해 할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이 질문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답하기 정말 어려운 문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제가 지식인들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들을 조금 공유하는 방향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가져온 해결책은 ‘완벽주의를 버려라.’ 입니다. 완벽주의가 실질적으로 왜 게으름으로 직결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완벽함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함을 따라가다가 이 벽이 너무 높음을 느끼고 아예 시도조차 안 하게 되는 상태로 전이되면서 게으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예 손도 안 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완벽주의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 우선 완벽주의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완벽주의의 본질은 결국 넓은 자아와 소유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소유 또한 자아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자아에 대해 알아보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자아는 ‘나 자신’을 의미합니다. 이 자아가 넓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전문 분야뿐 아니라 잘 모르는 분야까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활동을 통해 남이 나를 평가할까 봐 두려운 잠재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이 자아가 강해도 되지 않나 싶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서 무아는 자아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는 아예 자아가 없는 상태라고 보기보다 ‘나 자신’이라는 사람이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즉, 내가 지금 꼭 잘할 필요 없다는 그 깨달음을 얻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제 가설을 이해하셨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간적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관점은 진화심리학, 뇌과학에 기반합니다. (이 파트에서는 정재승 교수님의 특강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겠습니다.) 우리의 뇌에는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존재합니다. 뉴런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우리의 시냅스는 자주 활성화될수록 접근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쓰이는 이야기가 바로 양봉꾼들 이야기입니다. 양봉을 하시는 분들은 벌에 자주 쏘이시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몸이 벌침에 대한 대응을 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습관적으로 웹툰을 과하게 본다거나 게임을 과하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꼭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회피하는 활동이 더 끌릴까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우리가 예전부터 생존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길을 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게 될 경우 이 일을 잘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이전 문단에서 서술한 자아의 관점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참고 위험한 길에 뛰어들어보는 노력입니다. 어려운 일도 많이 뛰어들수록 시냅스의 연결이 강해지기 때문에 더 많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아침에 기상송 울릴 때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한 번 일어나보자 하고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 시간이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실천적 관점을 더 알고 싶다면 데이비드 고긴스의 저서나 그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청취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는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도파민 저울의 관점에서 시도해 볼만한 것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할 일을 못 하게 되는 이유는 사실 해야 할 일이 아닌 다른 일에 시간을 많이 쏟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시간을 낭비하곤 합니다. 그 원인은 사실 많이 알려진 도파민 체계의 붕괴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뇌의 프로그램은 과거에 머물러 있기에 지금과 맞지 않은데요. 이 도파민 체계가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도파민을 통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문제인 것이 바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생존 본능입니다. 그 본능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SNS를 켭니다. 이렇게만 보면 사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질적 문제는 이 도파민은 계속 갈망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얻은 정보로 만족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쇼츠, 릴스를 갈망합니다. 저는 그렇게 숏폼의 굴레에 빠져 2~3시간을 보낸 후 다시 할 일을 하려 했지만 도저히 할 일을 할 집중력이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우리 몸의 향상성 유지 체계가 도파민을 많이 느낀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그렘린 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를 비유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고통을 통해 무기력을 겪고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파민 디톡스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저도 이 주장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위 짧은 글을 통해 완벽주의의 극복, 시냅스의 재훈련, 도파민 디톡스라는 세 가지 방향에서 개선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천 방안을 그저 실천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로 전제조건이 맞춰진 상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전제조건은 중용입니다.


    글의 구성

    <도입>

    문제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전하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서술

    <본론>

    • 완벽주의적 관점
    • 정재승 교수를 통해 얻은 통찰
    • 도파민네이션을 읽고 상기시킬 수 있었던 것

    <결론 및 리뷰>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짚고 강조해야 할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

  • 2026년 3월 19일 – AI를 활용한 생각 정리

    [자아실현의 역동적 순환 모델: ‘해변’은 ‘항해’를 위해 존재한다]

    1. 조사(Research): 억지 희망의 노이즈 식별
    사고 과정: 비전 없는 프로젝트와 수업이 왜 힘든지 분석 → 그것이 내 ‘희망(방향성)’과 충돌하기 때문임을 인지 → 하지만 무작정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책임’을 지혜의 재료로 재정의.
    의미: 고통의 원인을 외부(학교, 기업)가 아닌 ‘나의 방향성과의 정합성’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상황을 통제할 논리적 주도권을 확보함.

    2. 기반(Base): ‘자연과 하나 됨’을 통한 시스템 리셋
    – 사고 과정: 어려운 문제에 매몰될 때 ‘산책로’가 주는 찰나의 행복을 관찰 → 이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인지적 과부하를 끄는 하드웨어 리셋임.
    의미: 환경(공간, 사람, 책)은 희망을 억지로 짜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나를 가장 순수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인프라임.

    3. 도출(Emergence): 평온에서 솟구치는 ‘진짜 희망’ (핵심)
    사고 과정: 자연과 하나 된 평온한 상태에 충분히 머물러 봄 → 역설적으로 그 충만함 속에서 다시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희망’이 자연스럽게 발생함.
    의미: “희망을 얻고자 하면 희망이 사라진다”는 통찰의 근거. 희망은 결핍에서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행복이 충만할 때 밖으로 뻗어 나가려는 본능적 에너지임을 증명함.

    4. 실행(Action): 거인의 어깨 위에서 연마하는 항해술
    사고 과정: 다시 생긴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말해보카’와 같은 거인들을 조사 → 내 경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밀도 높은 수련’을 선택.
    의미: 자아실현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연쇄적인 루프임. 이번 루프에서 얻은 ‘평온의 지혜’를 가지고, 다음 루프(말해보카 등)에서의 ‘치열한 도전’을 즐길 준비를 마침.


    💡 오늘 대화의 결론: ‘스테판의 엔진’ 작동 원리

    1. Input: 현실의 책임과 어려운 문제 (고통/노이즈)
    2. Cooling: 산책로와 자연, 침묵 (환경적 행복/리셋)
    3. Output: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사업을 하고 사업을 돕고 싶은 열망 (희망의 재발생)

    > “나는 숲으로 도망치기 위해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다로 나갈 용기를 얻기 위해 해변에 머문다.”

    이 플로우가 오늘 스테판님이 도달한 최종적인 자아실현의 설계도입니다.

  • 여전히 CS 공부는 필요합니다.

    이 글에서는..

    • AI가 코드를 대신 짜는 시대, 앞으로 필요한 역량은?
    • 예술은 비교적 자유로운 가치관, 그러나 개발자는 컴퓨팅 사고에 근거한 결정을 내려야 함.
    • 그래도 결정적인 건 가치관(트레이드오프 현상).

    AI가 코드를 대신 짜는 시대, 앞으로 필요한 역량은?

    AI 발전으로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하게 된 분야가 바로 IT 분야입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에러 코드를 AI한테 던지는 식으로 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커서의 등장으로 현재 프로젝트 코드를 컨텍스트로 사용하면서 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때부터 AI에게 에러코드를 던지는 식으로 개발을 해도 간단한 기능은 어느정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파일의 접근 권환을 행사할 수 있는 CLI툴인 클로드 코드가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로컬에 있는 정보를 모두 컨텍스트로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안티그레비티의 경우 직접 브라우저를 켜서 요구사항대로 구현되었는지 확인하기까지 합니다. AI의 발전은 실로 가속화되고 있고 간단한 웹페이지 구현은 사람보다 AI에게 맡기는 편이 더 효율이 좋은 상황입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AI는 날로 발전하고 있고, 더 이상 코드만 짜는 능력은 AI에 대체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코드를 짜도록 시키는 궁국적 지시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시에 이유가 논리적이여야 합니다. 그 논리는 컴퓨터 사이언스 지식, 설계 기법과 경험에서 옵니다.

    예술은 비교적 자유로운 가치관, 그러나 개발자는 컴퓨팅 사고에 근거한 결정을 내려야 함.

    일을 AI가 완전히 대체하게 되면 우리 모두는 지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 이 지시를 내렸는가에 대한 근거로 우리는 ‘그냥 이게 더 좋아’라는 그 느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곳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가치관을 그대로 제품에 투영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개발자들은 ‘그냥 이게 더 좋아’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제대로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결정을 돕는 것이 바로 컴퓨팅 사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찔한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이 설계 조차도 AI로 대체되지 않을까?

    그래도 결정적인 건 가치관(트레이드오프 현상).

    우리가 개발을 하게 되면 겪게 되는 것이 바로 트레이드오프입니다. 코드를 추상화 응집도는 좋아지나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중복 코드를 허용하면 결합도를 낮출 수 있지만, 응집도가 떨어집니다. 이처럼 설계를 하게 되면서 겪는 것이 이런 트레이드오프 현상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설계의 장단점을 아는 것은 AI가 대체할 수 있지만, 내가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궁극적 질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속도를 중시하는가 확장 가능성을 중시하는가?’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은 결국 실전 경험에서 쌓이게 됩니다.

    끝내며

    • AI의 발전으로 더 이상 코드 짜는 일만 해서는 안됨
    •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지시하는 역량
    • 여기서 논리는 컴퓨터 사이언스 등 관련 지식에서 옴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문제 정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아두시면 좋을 듯합니다.